[TENGA × KIM JUNG GI] 6주년 컵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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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가코리아는 텐가의 한국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한국의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왔다. 텐가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TOC-201 오리지널 버큠 컵”의 패키지를 한국의 아티스트가 디자인하고 텐가에서 제작과 출시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지금까지는 일러스트레이터, 타투이스트, 그래피티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시는 작가님과 진행해왔다.

2022년은 텐가코리아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갑작스럽지만, 영광스럽게도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담당할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정도의 대중적인 인지도도 가지고 계신 분과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김정기 작가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 덧붙이자면 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어떤 분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좋을지 계속 생각하는 동안 예전에 봤던 SK이노베이션 광고가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

김정기 작가님께 연락이 닿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메일,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공략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차례차례 시도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행인건 흔히 말하는 “읽씹”은 아닌것 같았다. 우리의 메세지를 보지 못하셨으니 “NO!”라는 거절도 아니라는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희망이 넘치는 해석으로 또 다른 연락 수단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작가님이 소속된 슈퍼애니를 통하고 통해서 연락이 되었는데(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의문인것이 통화했던 분은 작가님 측에서도 모르는 분이라고 하셨고 알려주셨던 매니저님의 번호도 달랐다. 우리는 누구와 통화를 했던 것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님 측에서도 텐가코리아 사무실로 연락을 주셨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 당시 텐가코리아의 사무실 이전으로 인해 매끄럽지 않았던 걸로 추측해본다.

그리고 작가님은 신문물과 친하지는 않으셔서 SNS 계정을 관리하는 분이 따로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작가님과 연락이 닿았다는 기쁨이 지나가고 텐가코리아 내부에서는 작가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실까? 라는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김정기 작가님이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걱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김정기 작가님과 김현진 매니저님은 긍정적으로 콜라보레이션을 검토해보시겠다고 답하셨으니까. 만세!!!! 또 다른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의 예산으로 괜찮을까? 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지금 생각해보면 괜한 걱정이었다. 작가님과 매니저님은 돈에 크게 연연하시지 않는 대인배셨으니까.

작가님은 소금빵을 좋아하셨다. 성수역 주변에는 신기한 곳이 많은데 그 당시 새로 생긴 소금빵을 파는 곳도 신기한 곳 중에 한군데였다. 내가 먹어본 소금빵 중에서 가장 맛있었기에 소금빵을 사서 작가님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도 너무 맛있다는 말씀을 하시며 소금빵을 드셨다. 종류별로 더 많이 사지 않은 내 자신을 반성했다. 작가님은 소탈하셨다. 계약과 진행 상황 공유, 취재를 위한 인터뷰 등으로 몇 번 찾아가서 귀찮게 해드렸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친절하셨다. 작가님 뿐만 아니라 슈퍼애니에 소속된 분들 모두가 친절하셨다.

슈퍼애니를 이끌고 계시는 김현진 대표님은 때로는 근엄하시면서도 장난기가 많은 분이셨고 “마스터”라는 칭호를 받는 김정기 작가님은 소년같은 모습도 가지고 계셨다. 대화 중에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직업인데 일하지 않을 때도 그림을 그리는게 힘들지는 않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여쭤봤는데, 일하지 않을 때는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밸런스를 조절한다고 대답하셨다. 작가님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위였다.

제품 디자인은 본사 사장님께 보고하는 자리에서도 쉽게 통과되었다. 회의를 진행하는 중에 본사에서도 작가님을 아는 직원이 몇 명 있어서 오히려 일본에서도 판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왔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도 다른 콜라보레이션으로 계속 관계를 맺고 싶다는 방향으로까지 번져서 이게 아닌데…?!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참고로 텐가코리아는 작가님에게 디자인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별도의 요청을 하지는 않는다. 오직 작가님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제품 디자인은 바로 통과가 되었지만 제품이 담길 박스가 문제였다. 박스는 반드시 제품이 움직이지 않도록 확실히 고정되어야 하고 뚜껑을 닫고 흔들었을 때 소리가 나서도 안 된다는 지침이 있었다. 할 수 없다. 예산을 더 추가해서 박스 디자인은 수정되었다. 그리고 박스 샘플은 일본에 보내서 실물도 확인받은 다음에서야 무사히 제작될 수 있었다.

인터뷰 건으로 추석 전에 작가님을 만나 뵈었을때 한달 반의 일정으로 유럽 출장을 다녀오신다고 했다. 출장을 다녀오실 때쯤이면 제품도 완성될 시기였고 팝업스토어에서 사인회도 진행하기로 어느 정도 논의가 된 상황이었다. 비보가 날아들었다. 작가님의 SNS 계정으로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다.

오보이길 기도했지만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며칠 후에는 매니저님이 직접 연락을 주셨다.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맞는지에서부터 약 두 달간 여러 논의를 진행했다. 작가님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슈퍼애니, 텐가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

12월, 텐가코리아 6주년 콜라보레이션 유니버스 컵 세트는 세상에 나왔다. 김정기 작가님을 추억하자면 내가 만나본 세상에 알려진 분 중에서 가장 소탈하셔서 마치 옆집 아저씨 같았다. 출장에서 돌아오시면 또 소금빵을 사서 작업실로 찾아뵙기로 했는데 만남의 장소는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다.

사진 속의 작가님은 살짝 뒤돌아보시며 은은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작가님을 알게 된 기간과 시간은 짧지만 나는 늘상 작가님을 추억하게 될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검색창에 “김정기”를 찾아보는 것처럼. 이 글은 내가 작성했지만 6주년 컵은 나로 인해 출시된 것은 아니다.

나와 프로젝트를 함께한 마케팅 소속의 동료 그리고 텐가코리아 직원 모두 그리고 텐가 본사 직원, 슈퍼애니 소속 모든 분의 노력과 땀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김정기 작가님과 콜라보레이션을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그곳에서도 좋아하시는 그림을 마음을 그리고 계시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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